형사 · 명예훼손/모욕
학술서에 쓴 역사 서술도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가 될까요?
핵심정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연구서의 서술로 명예훼손죄가 기소된 사건에서, 대법원은 그 표현을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보아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원심판결을 파기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해당 판결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명예훼손)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부분은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았고, 원심이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어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했습니다. 피고인의 유무죄는 환송 후 서울고등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부분으로 남았습니다.
하급심
- 서울고등법원 2017. 10. 27. 선고 2017노610 판결: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범죄일람표 순번 5, 7, 10, 11, 16, 20, 23, 26, 27, 30, 34 기재 표현에 관한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 서울동부지방법원 2015고합329 판결: 위 표현들에 관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쟁점
대학 교수인 피고인이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책을 출판했는데, 검사는 책 속 표현이 위안부였던 피해자들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적시했다며 형법 제307조 제2항의 명예훼손죄로 기소했습니다. 학문적 연구 결과로 쓴 표현을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로 볼 수 있는지, 그리고 헌법 제22조 제1항의 학문의 자유가 이 판단에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문제 되었습니다.
사실관계
- 피고인은 오랜 기간 대학의 일어일문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본 문학과 한일 근현대사를 연구했습니다.
- 피고인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책(이하 이 사건 도서)을 출판했고, 공소사실에 따르면 그 무렵 전국 서점 등을 통해 배포했습니다.
- 검사는 이 사건 도서의 표현이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위안부들이 본인의 선택에 따라 매춘업에 종사했다는 사실, 일본군에 애국적으로 협력했다는 사실, 일본군의 강제 연행이 없었다는 사실을 적시했고 이는 허위라고 보아 기소했습니다.
- 문제 된 표현에는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 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등이 있었고, 표현들은 원심 판결문 별지 범죄일람표에 순번으로 정리되었습니다.
- 원심이 일부 표현에 관하여 유죄로 판단하자 피고인과 검사가 모두 상고했습니다.
- 제1심이 사건 각 표현 부분 무죄
- 2017. 10. 27.원심, 제1심판결 파기 후 이 사건 각 표현 부분 유죄
- 2023. 10. 26.대법원, 원심판결 파기 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
원심의 판단
원심은 범죄일람표 순번 5, 7, 10, 11, 16, 20, 23, 26, 27, 30, 34 기재 표현(이하 이 사건 각 표현)이 피고인의 분석 또는 의견 제시를 넘어 증거로 증명 가능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또 이 사건 각 표현은 독자들이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내용을 받아들이도록 서술되어 허위성이 인정되고, 독자들에게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 정부에 사죄와 책임을 요구하는 이 사건 피해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며, 피고인에게 명예훼손의 고의도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제1심은 이 사건 각 표현에 관한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으나, 원심은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학문적 표현과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학문적 표현행위는 기본적 연구윤리를 위반하거나 해당 학문 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 학문적 과정이라고 보기 어려운 행위의 결과라거나, 논지나 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학문적 연구에 따른 의견 표현을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 또는 역사적 사실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학문 영역에서의 ‘역사적 사실’과 같이, 그것이 분명한 윤곽과 형태를 지닌 고정적인 사실이 아니라 사후적 연구, 검토, 비판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재구성되는 사실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학문적 표현을 그 자체로 이해하지 않고, 표현에 숨겨진 배경이나 배후를 섣불리 단정하는 방법으로 암시에 의한 사실 적시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된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은 해당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고도 보았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 사정을 들어 이 사건 각 표현을 피고인의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평가함이 타당하고,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만한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이 사건 도서는 피고인의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학문적 표현물로 보이고, 기록상 사료 위조·변조 등 연구윤리 위반이나 피해자들의 자기결정권·사생활 비밀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존엄을 경시했다고 볼 만한 사정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도서 전체의 내용과 맥락에 비추어 피고인이 강제 연행 부인, 자발적 매춘, 일본군에 대한 적극 협력 주장을 뒷받침하려고 이 사건 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피고인은 강제로 끌려가는 이들을 양산한 구조를 만든 것이 일본 제국 또는 일본군이라는 점을 도서에서 여러 차례 서술했습니다.
- 일본군 위안부의 전체 규모는 적게는 30,000명에서 많게는 400,000명까지 추산되고 그중 조선인 비율도 50% 이상으로 추정되므로, 이 사건 각 표현은 개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에 관한 일반적, 추상적 서술로서 학문적 주장 내지 의견의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 범죄일람표 순번 5, 16, 20, 26 표현에 쓰인 ‘공적 강제 연행’은 국가나 군 차원에서 어느 정도 개입해야 그렇게 부를 수 있는지에 관하여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피고인의 주장이 학계에서 주류적인 지위를 차지한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문언의 객관적 의미나 대중의 언어습관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는 수준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또 그 표현이 ‘공적 강제 연행’에 대한 학문적 개념 포섭을 전제로 한 것임이 표현 전후 맥락에 의하여 충분히 확인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그 서술 부분이 사실의 적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순번 7, 10, 11, 27, 30, 34 기재 표현은 문구만으로 검사가 주장한 자발성이나 동지적 관계에 관한 명제를 곧바로 이끌어 내거나 유추하기 어렵고, 순번 23 기재 표현은 피고인의 학문적 의견 내지 주장을 표명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이 사건 각 표현이 사실 적시에 해당함을 전제로 유죄로 판단한 것은 형법 제307조 제2항에서 정한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검사의 상고이유에 관하여는 그 밖의 범죄일람표 기재 표현에 관한 원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은 원심이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으므로, 대법원은 원심판결 전부를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관련 판례
- 대법원 2018. 7. 12. 선고 2014도3923 판결: 학문의 자유는 기존의 인식과 방법을 답습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거나 비판을 가하여 새로운 인식을 얻기 위한 활동을 보장하는 데에 본질이 있다는 법리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 대법원 2008. 11. 27. 선고 2007도5312 판결: 전문 또는 추측의 형태로 표현되었더라도 표현 전체의 취지로 보아 사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 사실의 적시로 인정한다는 종전 법리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관련 법령
- 헌법 제22조 제1항: 학문의 자유를 특별히 보호하는 근거로, 학문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판단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 헌법 제10조: 인격권 보호의 근거로, 연구자가 연구의 전 과정에서 타인의 명예와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한계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 형법 제307조 제2항: 이 사건 공소사실에 적용된 조항으로, 이 사건 각 표현이 이 조항에서 정한 명예훼손죄의 사실 적시에 해당하는지가 다투어졌습니다.
- 형사소송법 제308조: 표현이 학문의 자유로서 보호되는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는 점은 검사가 증명하여야 한다는 판단과 관련된 조문입니다.
실무상 의미
- 연구서나 논문의 표현이 문제 되더라도, 기본적 연구윤리 위반이나 논지·맥락과 무관한 표현으로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학문적 연구를 위한 정당한 행위로 본다는 기준이 제시되었습니다.
- 대법원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경우 연구의 전 과정에 걸쳐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여야 할 특별한 책임을 부담한다고도 보았으므로, 연구윤리 준수와 연구 대상자의 인격권 존중이 함께 요구됩니다.
- 대법원은 문제 된 문구만 떼어 보지 않고 표현 전후의 맥락과 도서 전체의 내용, 집필 의도를 함께 살폈으므로, 학문적 표현이 문제 된 사건에서는 저작 전체의 취지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건 표시
- 대법원 2023. 10. 26. 선고 2017도18697 판결 [명예훼손] [공2023하,2140]
- 원심: 서울고등법원 2017. 10. 27. 선고 2017노610 판결
- 판결 원문: 국가법령정보센터
이 글은 판결을 소개하는 일반 정보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판결과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은 판결문을 따로 확인해 정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