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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백리포트

형사 · 성범죄

피해자가 2년 이상 보관하다 제출한 바지의 DNA 감정 결과를 유죄 증거로 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김진오 대표변호사 · 김호윤 변호사 · 박정철 변호사 · 유태선 변호사2026. 10. 13.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6도4423 판결

핵심정리

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2년 이상 보관하다 제출한 바지의 DNA 감정서를, 보관 과정에 조작·훼손·첨가가 없었는지 심리하지 않고 유죄 증거로 삼은 원심판결을 대법원이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이며 실제 사건과 관계없습니다.

해당 판결

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6도4423 판결(강간)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원심은 제1심의 무죄판결을 파기하고 유죄를 선고했는데, 대법원은 원심이 바지에 대한 DNA 감정 결과의 증명력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사실을 심리하지 않고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은 것을 과학적 증거방법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오해라고 보았습니다.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는 대법원이 정하지 않았고, 광주고등법원이 다시 심리하여 판단하게 됩니다.

하급심

  • 광주고등법원 2026. 2. 12. 선고 2025노129 판결: 검사의 항소를 받아들여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징역 3년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3년간 취업제한을 명했습니다.
  •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 2025. 2. 20. 선고 2024고합59 판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쟁점

제1심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무죄를 선고했는데, 대법원은 검사가 원심에 이르러 제출한 바지 DNA 감정서가 제1심과 원심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주된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피해자가 수사기관 밖에서 2년 이상 보관하다 제출한 바지에 대한 감정 결과를 어떤 조건에서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있는지, 항소심이 제1심의 사실인정을 뒤집을 수 있는 경우가 언제인지가 문제 되었습니다.

사실관계

  • 피고인과 피해자는 지인의 소개로 2021. 8. 23. 처음 연락했고, 이 사건 전까지 세 차례 만났습니다.
  • 피고인은 2021. 8. 27. 20:40경부터 21:00경까지 사이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서 피해자와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피고인은 성관계 사실은 인정하면서, 피해자를 폭행하거나 협박하여 강제로 간음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 피해자는 당시 허리 부분이 고무 밴딩으로 된 슬랙스 바지를 입고 있었고 피고인이 이를 잡아당겨 벗겼다고 진술했고, 피고인은 피해자가 단추가 있는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스스로 벗었다고 진술하여 두 사람의 진술이 서로 달랐습니다.
  • 경찰의 불송치결정과 검찰의 불기소결정이 있었으나, 광주고등법원이 2024. 1. 15. 피해자의 재정신청을 인용하여 검사가 2024. 5. 9. 공소를 제기했습니다.
  • 피해자는 사건 약 한 달 뒤 바지 사진을 수사기관에 냈고, 바지 실물은 재정신청이 인용된 이후인 2024. 1. 26. 비로소 검찰에 제출되었습니다. 수사와 제1심 과정에서는 바지에 대한 DNA 감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원심 재판 과정에서 이루어진 감정 결과 피고인의 Y염색체 DNA형이 바지 안쪽 면의 사타구니 솔기부위에서 검출되었고, 바지 겉면 12곳에서는 불상 남성의 DNA가 검출되었습니다.
피고인피해자검사원심2021. 8. 27.차량 뒷좌석에서 성관계2년 이상 보관한 바지 실물제출(2024. 1. 26.)재정신청 인용 후강간 공소 제기바지 DNA 감정서 제출
그림. 사건 관계(판결에 적힌 사실을 정리)
  1. 2021. 8. 27.피고인 차량 뒷좌석에서 성관계
  2. 2024. 1. 26.피해자가 보관하던 바지 실물을 검찰에 제출
  3. 2025. 2. 20.제1심 무죄
  4. 2025. 11. 27.경대검찰청 바지 DNA 감정
  5. 2026. 2. 12.원심 유죄, 징역 3년
  6. 2026. 5. 29.대법원 파기환송
그림. 사건 경과(판결에 적힌 사실을 정리)

원심의 판단

원심은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원심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 사실의 주요한 부분을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했다고 보았고, 피고인이 2021. 8. 28. 통화에서 「너무 강압적으로 한 것은 미안해」라고 말한 점 등을 들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했습니다. 바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 법원에서 위 바지에 대한 유전자 감정을 의뢰한 결과, 피해자가 범행 당시 자신이 입었다고 주장하는 바지의 안쪽 십자점 부위에서 피고인의 Y염색체 DNA형이 검출되었는바, 피해자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피고인의 진술과 달리 이 사건 범행 당시 피해자는 벗기기 쉬운 고무밴딩 슬랙스 바지를 입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원심은 바지의 밴딩 부분 바로 아래쪽 등이 손상된 점도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을 뒷받침한다고 보았습니다. DNA가 전이 또는 오염되었을 수 있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피해자가 재정신청 당시 바지를 증거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따로 보관하여 왔다고 기재한 점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제1심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을 하여 간음한 사실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으나, 원심은 제1심 판단에 사실오인의 위법이 있다고 보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항소심이 제1심의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경우와 과학적 증거방법의 증명력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속심을 기반으로 하되 사후심적 요소도 상당 부분 들어 있는 이른바 사후심적 속심의 성격을 가지는 항소심에서 제1심판결의 당부를 판단할 때에는 그러한 심급구조의 특성을 고려하여야 하므로, 항소심이 제1심의 판단을 재평가하여 사후심적으로 판단하여 뒤집고자 할 때에는 제1심의 증거가치 판단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거나 사실인정에 이르는 논증이 논리와 경험법칙에 어긋나는 등으로 그 판단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현저히 부당한 경우이거나, 항소심의 심리 과정에서 심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칠 만한 객관적 사유가 새로 드러난 경우라야 한다.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방법은 전제로 하는 사실이 모두 진실임이 입증되고 추론의 방법이 과학적으로 정당하여 오류의 가능성이 전혀 없거나 무시할 정도로 극소한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라야만 법관이 사실인정을 하는 데 상당한 정도로 구속력을 가진다. 이를 위해서는 그 증거방법이 전문적인 지식·기술·경험을 가진 감정인에 의하여 공인된 표준 검사기법으로 분석을 거쳐 법원에 제출된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한다. 특히 그 증거방법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유일하거나 유력한 증거일수록 자칫 그 과학성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로 인해 형사소송의 요체인 엄격한 증명을 요하는 증명법칙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이 사건에서는 다음 사정 등을 들어 바지의 보관 과정에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객관적으로 담보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 바지는 2021. 8. 27.부터 2024. 1. 26.까지 2년 이상 피해자가 보관했는데, 그동안 피해자 또는 제3자에 의해 조작·훼손·첨가가 있었는지, 바지가 뒤늦게 제출된 경위 등에 대하여 피해자가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진술한 적이 없고 재판 과정에서 심리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 재정신청 이유보충서의 「증거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하여 따로 보관하여 왔습니다.」라는 기재만으로는 바지가 감정 전까지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 없이 보관되었음이 담보되었다거나 검사가 이를 증명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 피해자의 직장 동료들이 피해자가 제출한 바지 사진을 보고 피해자가 출근, 퇴근할 때 입었던 바지가 아닌 것 같다고 진술한 사실이 수사보고서에 나타나 있는 등 피해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증거가 있었는데도, 수사기관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바지를 피해자의 수중에 방치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정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유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감정서의 과학적 합리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야기되었다고 보았습니다.
  • 바지에서는 피고인과 피해자 외에 불상 남성의 DNA가 다수 검출되었습니다. 피고인의 DNA는 바지 안쪽 사타구니 솔기부분 한 곳에서만 검출되고 바지 겉면에서는 전혀 검출되지 않은 반면, 불상 남성의 DNA는 바지 겉면 12곳에서 검출되었습니다.
  • 그러므로 검사는 바지가 수사기관 외부에서 방치되는 동안 오염될 여지가 없었고 피고인의 DNA에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을 추가로 증명할 필요성이 있었고, 원심도 이에 관하여 추가 심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할 수 없다는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고, 원심이 피해자를 다시 증인으로 신문하여 형성한 심증도 존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원심이 감정서의 증명력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사실의 구비 여부에 대한 심리 없이 만연히 이를 취신하여 유죄의 증거로 추가한 것은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과학적 증거방법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라고 보았습니다. 원심으로서는 위 전제사실에 대한 증명을 토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거나, 감정서를 제외하고도 원심에서 추가로 이루어진 증거조사 결과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의 나머지 상고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관련 판례

  • 대법원 1996. 12. 6. 선고 96도2461 판결: 항소심이 제1심의 판단을 재평가하여 뒤집을 수 있는 경우에 관한 법리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 대법원 2017. 3. 22. 선고 2016도18031 판결: 위 항소심 법리의 근거로 함께 들었습니다.
  • 대법원 2011. 5. 26. 선고 2011도1902 판결: 과학적 증거방법은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법리의 근거로 들었습니다.

관련 법령

  • 형법 제297조: 피고인에게 적용된 강간죄 조문입니다.
  • 형사소송법 제307조: 대법원이 과학적 증거방법의 증명력에 관한 법리의 참조조문으로 들었습니다.
  • 형사소송법 제308조: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보았고, 이 조문을 그 판단의 참조조문으로 들었습니다.
  • 형사소송법 제364조: 원심이 이 조문 제6항에 따라 제1심판결을 파기하고 다시 판결했고, 대법원은 항소심이 제1심 판단을 뒤집을 수 있는 경우에 관한 법리의 참조조문으로 들었습니다.

실무상 의미

  • 대법원은 DNA 감정 같은 과학적 증거방법이라도 채취·보관·분석 등 모든 과정에서 자료의 동일성이 인정되고 인위적인 조작·훼손·첨가가 없었음이 담보되어야 사실인정에 상당한 정도의 구속력을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증거물이 수사기관 밖에서 오래 보관되었다면 그 보관 경위가 심리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 이 사건에서는 바지의 보관 경위와 뒤늦은 제출 경위에 관하여 피해자가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진술한 적이 없다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초동수사에서 증거품을 확보하지 않은 사정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는 사유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하면서도, 검사가 감정서에 대한 의문을 해소할 증명을 추가로 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 피고인 측은 항소심에서 새로 제출된 과학적 증거에 대하여 보관 및 제출 과정, 피해자 주장과 배치되는 반대증거, 다른 남성의 DNA 검출 등을 들어 증명력을 다툴 수 있고, 대법원은 감정 결과의 증명력을 인정하기 위한 전제사실의 구비 여부를 심리하지 않은 채 이를 유죄 증거로 삼은 원심 판단을 법리오해로 보았습니다.

사건 표시

이 글은 판결을 소개하는 일반 정보이며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사건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으니 변호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판결과 법령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원문이 있으면 그 원문으로 연결됩니다. 연결되지 않은 하급심 판결은 판결문을 따로 확인해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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